이 글에 적혀있는 걸 보면 스스로에게 모진 말을 할 정도로 잘못 살진 않았는걸요? 오히려 엄청 애쓰고 있다는 게 보입니다.
지금 고2잖아요.
고등학교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 “나는 여기서 제일 못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게 당연해요.
왜냐면 외고라는 특성상 거기 있는 애들 대부분이 중학교 때 최상위권으로만 불리던 애들이니까요. 그런 집단 안에 있으면 원래 누구든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고, 심지어 빛나는 애들 틈에 있으면 자기만 하자가 있는 것처럼 착각해요.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멍청해진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그냥 환경에 치이고 지쳐 있는 거로 보여요.
사람마다 속도는 다 달라요.
어떤 애들은 지금 반짝이고 있지만 20대 중반쯤 꺼질 수도 있고, 질문자님처럼 느리고 답답하게 나아가는 것 같아 보여도 나중에 꽃 피우는 애들도 있어요. 대기만성이라고도 해요.
저는 질문자님보다 나이가 많지만 고등학교 때 공부는 그냥저냥 했고, 나중에 대학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잘 몰라서 방황 많이 했거든요. 그럼에도 지금은 좋아하는 일 찾아서 잘 먹고 나름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라고 했는데요.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붙잡고 있는 게 맞지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질문자님이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버티시는 거예요.
“서울권 대학 못 가면 인생 망했다.”
절대 아님.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 요즘. 서울대 출신 아니고, 심지어 좋은 대학 나와도 자기 길 못 찾는 사람 많음.
“친구들은 빛나는데 나는 멍청해진다.”
그 친구들도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으론 다들 불안하고 힘들어할 수 있고 잘난 모습만 보여주는 걸수도 있어요. 얘기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르지만요.
“지금 이 길이 나한테 안 맞나봐요.” → 맞아요. 외고라는 좁은 세계가 안 맞을 수 있어요. 근데 그것이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봅니다
당장 공부를 잘하자는 압박 말고 하루 30분이라도 잔잔한음악듣거나 명상해보세요. 뇌가 멈춘 상태에서 억지로 공부하면 더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혹시 너무 힘들어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안 쉬어질 정도라면 학교 상담실이나 청소년 상담전화(1388) 한 번 이용해보기.
이거 제 경험상에도 도움이 되었었답니다.
지금 “내가 못나서 이렇게 된 거다”라고 스스로를 학대하는데 못난 게 아니라 그냥 너무 지쳤을 뿐이에요. 인생 절대 끝난 거 아니고, 이제부터 더 많은 기회가 올 거예요. 응원합니다